교복 위에 군복을 입고, 구령에 맞춰 운동장을 행진하던 그 시절.
깃발을 들고 선두에 서던 학생, 정문 앞에서 도열하던 전교생.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 시대를 지배했던 학교 문화가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교련이라 불렀고, 학도호국단이라 기억한다.
한때 대한민국의 학교에서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문화들이 존재했다. 군사 훈련을 학교에서 받고, 국가에 대한 충성과 질서를 교육받던 시절. 지금은 ‘레트로’라는 이름으로만 회상되지만, 당시 학생들에게는 일상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교련과 학도호국단이라는 사라진 제도들을 돌아보며 그 의미와 역사적 배경을 살펴본다.
🪖 교련: 학교 안의 군사 훈련
교련은 '교련 과목', 즉 '교련교육'으로, 1969년 박정희 정권 하에서 본격적으로 도입된 중·고등학교 정규 과목이다. ‘국토 방위 사상 고취’를 목적으로 시행되었으며, 제식훈련, 사격, 위장, 행군 등의 군사 훈련이 포함되었다.
- 도입 시기: 1969년 중학교 → 1970년 고등학교 확대
- 복장: 군복 착용 의무, 모자와 명찰 포함
- 훈련 방식: 구보, 도수체조, 구령, 병장기술 교육 등
교련 시간에는 실제 제식 훈련을 운동장에서 진행하며, 일부 학교에서는 모의 사격이나 실탄 사격 체험까지 이뤄지기도 했다. 교련 교사는 예비역 장교 출신이 많았고, 학생들은 병영체험을 통해 '국민정신교육'을 받았다고 평가되었다.
왜 사라졌을까?
1980년대 들어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고 학생운동이 확산되면서, 교련은 강제적인 국가 이념 주입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1988년 노태우 정부 시기부터 폐지가 논의되었고, 결국 1991년 중학교에서, 1993년 고등학교에서 교련 과목이 완전히 폐지되었다. 이는 교육이 민주주의적 가치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 학도호국단: 학생들의 군사적 자치 조직
학도호국단은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실질적으로 학생군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시작되었고, 전후에는 학생 자치 조직 형태로 재편되었다. ‘국가와 학교를 지킨다’는 명목 아래, 전국의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조직되었다.
- 활동 내용: 질서 유지, 국기 게양식, 단체 구호, 명예 경비
- 상징: 제복, 깃발, 휘장
- 운영 방식: 교내 지휘 계통 존재 (단장, 부단장, 중대장 등)
학도호국단은 일제강점기의 ‘학도병’ 전통을 이어받아 애국심 고취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나, 실제론 일방적 권위주의적 통제 기제가 되기도 했다. 학생들은 자율이 아닌 ‘명령 체계’ 안에서 활동했고, 교련과 함께 당시 학교 분위기를 상징하는 제도였다.
왜 해체되었나?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군사정권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이 확산되면서 학도호국단도 '학생 감시와 통제의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1984년, 전국 대학의 학도호국단은 전면 해체되었고, 중·고등학교 단위의 조직도 점차 사라졌다.
🕰️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유
교련과 학도호국단은 분명히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체계였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세대에게는 '같은 운동장, 같은 구령'으로 공유된 집단적 기억이기도 하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시절을 돌아보는 건 단지 향수만이 아닌, 교육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를 되묻는 일이기도 하다.
한때 교복 위에 군복을 입고, 깃발을 들고 행진하던 학생들이 있었다.
교련과 학도호국단은 강제였지만, 그 강제 속에서 자란 세대는 분명 존재한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자율’과 ‘민주’라는 가치도, 어쩌면 그러한 과거를 통해 도달한 것인지 모른다. 사라진 그 시절, 우리는 그 속에서 교육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를 다시 바라볼 수 있다.
'지구촌 이모저모 > 세계의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사회의 학연 문화, 게이오보이와 여자 명문학교 네트워크 (0) | 2025.03.27 |
---|---|
일본의 대학 입시 시험: 대학 입학 공통 테스트(센터 시험) 한번에 알아보기 (0) | 2025.03.16 |
편차치(偏差値) 완벽 가이드, 일본 입시의 핵심 지표 이해하기 (0) | 2025.03.16 |
미국의 입시 시험인 SAT와 ACT의 모든 것을 한번게 알아보기 (0) | 2025.03.16 |
영국의 입시시험 A-Level 완벽 가이드 (2) | 2025.03.16 |